​「말해야 하는 것, 말할 수 있는 것」, 소설가 김혜진, 2019

2019.10. MMCA 고양레지던시 비평집

나는 2017년 박지혜 작가를 처음 만났다.

<평범한 실패>라는 소설(전시 작품 중 하나였다.)을 쓰는 데에 도움을 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를 수락하면서였다. 이듬해 박지혜 작가의 개인전이 열렸고, 올해 국립현대미술관 레지던시 세미나를 함께 준비하면서 작가와 몇 차례 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는 박지혜 작가가 언어에 매우 민감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작가는 장황하고 현학적이고 추상적인 말들에는 관심이 없다. 언제나 정확하게 효율적으로 언어를 구사하는 데에 집중하며, 보다 쉽고 단순하게 언어를 운용하는 데에 공을 들인다. 아마도 단어나 문장이 지닌 단일한 의미를 넘어서 그 말들에 달라붙은 아주 작은 의미들과 그 말들이 가닿을 수 있는 의미의 영역까지 고려한 결과일 것이다.

언젠가 박지혜 작가는 미술계 안에서 통용되는 언어의 불편함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언어는 전시 서문이나 비평, 평론이나 작가 노트, 기획서나 작품 소개글을 말하는데, 작가는 이런 글들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추상성이나 모호함, 불친절함에 어떤 한계를 느끼는 듯 보였다.

어떤 예술 작품이든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감상하고 해석하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언어가 동원될 수밖에 없다. 물론 언어가 어떤 작품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어라는 것은 결코 작품과 1:1로 대응되지 않으며, 대부분의 경우 작품으로부터 너무 멀거나 가까이 있는 탓에 어떤 오해와 몰이해, 역전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불필요하고 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작가는 고민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말해야 하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에 대해. 작가와 작품 사이에 혹은 작품과 관객(독자) 사이에 어쩌면 최초로 놓이게 될 그 가느다란 다리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해. 그건 창작자에게 늘 어렵고 조심스러운 문제다. 어쨌거나 박지혜 작가가 기존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찾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작가의 작품 세계가 던지는 질문과 밀접하게 이어진다. 그러니까 제도와 규칙, 보편과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을, 기존의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에 작가는 아마도 어떤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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