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히 부질없을 것」, 아트스페이스 풀 디렉터 안소현, 2016

2017.11. 아트스페이스 풀 작가지원 프로그램 POOLAP

프랑스어에 à peine이라는 부사구가 있다. 이 구문의 핵심은 peine(고통)이다. 따라서 à peine의 어원에 가장 가까운 의미는 ‘간신(艱辛)히’ 이다. 그리고 우리말과 마찬가지로, 고단한 노력은 목표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것이라는 전제 하에 그것은 ‘가까스로’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표현이 쓰인 문장을 우리말로 번역하다보면 난감한 경우가 생긴다. 그것은 문맥에 따라 어떤 때는 ‘가까스로 성공했다’는 안도감을 나타내지만, 다른 때는 ‘기껏해야 ~ 밖에 안된다’는 열패감을 내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표현을 번역할 때는 먼저 행위의 성패를 따져봐야 한다. 그래서 문장의 주체가 결국 성공했다는 것인가, 실패했다는 것인가? 말의 외연은 기준선에 가깝다는 좌표를 나타낼 뿐이지만, 내포는 그 기준선에 닿은 자와 닿지 못한 자를 기어코 나누라고 요구한다. 이 표현이 고통에서 시작해서 목표에의 접근을 의미하다 급기야 그 의미가 통하려면 성패가 구분되어야 하는 상황은 얄궂게도 이 곳의 젊은 작가들의 삶과 닮았다. 박지혜는 작가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이 ‘간신히/가까스로/기껏해야’의 복잡한 정서를 물리적 공간과 경제적 맥락 속에서 풀어놓는다.

 

제약은 나의 힘

 

… 박지혜는 스스로 처리하기에 좋은, 심지어 “버리기에 완벽한” 작품들을 만든다고 말하곤 한다. 현재의 경제적 조건에 간신히 맞추고, 있는 만큼의 공간에 가까스로 밀어넣는 작업을 하지만, 그 결과물이 기껏해야 제 자리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박지혜의 작업은 최적화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박지혜의 작업은 제약을 없애거나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거기에 종속된다는 점에서 수행적이다. 일일이 종이의 치수를 측정하고 계산해서 손으로 잘라 붙여 매끈한 구조를 만드는 일은 질릴 만큼 노동집약적인데다, 그런 작업들을 철저하게 주어진 공간 안에서 제작, 전시, 보관 혹은 폐기할 수 있게 함으로써 예술활동의 제약 자체를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련의 작품들을 맞닥뜨리면 그런 수행적 의미가 전부라고 요약하기에는 눈 앞에서 읽어낼 것들이 너무 많다. 시선은 어느 새 작가를 둘러싼 환경에서 작품 자체로 옮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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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감오류; 기꺼운 만남> 전시도록(아트스페이스 풀 문의)에서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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